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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판매 앨범 천만 장 판매 여가수?

글 : 이희주

 

현재 한국 가요계는 K-POP의 부흥에 맞춰 아이돌 위주로 개편되어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팬덤형 아이돌 그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대로, 지금은 빌보드를 노리는 아이돌 그룹은 넘쳐나는 반면, 남성 솔로 가수는 예전에 비해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 솔로 가수는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 솔로 가수만큼은 시대를 타지 않고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래서 한 번 모아보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대세’라 불렸던 여자 솔로 가수 10명.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도록 하자.

 

양파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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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파는 지난 1996년 12월, 1집 ‘애송이의 사랑’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면서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대세’의 자리에 등극했다. 그녀의 데뷔곡인 ‘애송이의 사랑’은 KBS 2TV <가요톱10>에서 여러 주에 걸쳐 1위를 차지하면서 양파에게 영예의 ‘골든컵’을 안겨주었다. 3집 타이틀곡인 ‘Addio’와 긴 공백 이후 들고 온 곡인 ‘사랑…그게 뭔데’ 역시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엄정화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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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눈동자’라는 곡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엄정화. 코러스 출신인 그녀는 연기와 음악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지만, 데뷔 이후 몇 년 간은 무명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반전의 기회를 가져다준 것은 1996년도에 발매한 곡인 ‘배반의 장미’였다. 해당 곡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엄정화의 위치는 완벽하게 달라졌고, 이후에 내놓은 ‘Poison’, ‘Festival’, ‘몰라’, ‘다 가라’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엄정화는 이른바 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김현정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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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현정은 1997년도, ‘그녀와의 이별’로 데뷔했다. 170cm를 훌쩍 넘는 늘씬한 키에 록 기반의 파워풀한 가창력을 갖춘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롱다리 미녀 가수’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혼자한 사랑’, ‘되돌아온 이별’, ‘멍’ 등, 여러 곡을 히트시키기도 했다. 한편, 최근 유튜브 콘텐츠 <탑골가요>가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김현정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댓글을 보면 “김현정이 이렇게 음악방송 1위를 많이 했는지 몰랐다”라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정현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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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도에 ‘와’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정현은 파격적이고 신선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테크노에 국악을 접목시킨 ‘와’는 발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요 차트를 휩쓸었으며,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커다란 부채를 들고 나와 신들린 듯 춤을 추는 이정현에 대한 인기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가수 활동 당시 이정현은 ‘외계인’, ’전사’, ‘바비 인형’, ‘마술사’ 등 다양한 콘셉트를 선보이면서 변신의 귀재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박지윤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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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하늘색 꿈’으로 데뷔했을 당시만 해도 박지윤은 풋풋한 여고생 이미지로 소소하게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 발매한 ‘Steal Away’와 ‘가버려’의 인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대세’라 칭해지기엔 살짝 부족한 면모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가요계를 평정한 것은 박진영과 손을 잡고 만든 ‘성인식’ 발매 이후였다.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 과감한 패션과 안무로 무장한 그녀는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주었고, 한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장나라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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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데뷔한 장나라는 해당 곡으로는 그다지 신통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 MBC의 청춘시트콤인 <뉴논스톱>에 출연하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해당 시트콤 속 장나라의 어리바리한 캐릭터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후속곡인 ‘고백’과 ‘4월 이야기’ 모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이듬해에 발매한 ‘Sweet Dream’의 인기는 더욱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그녀는 2002년, 다수의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효리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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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걸그룹 핑클의 멤버로 데뷔한 이효리는 2003년도에 홀로서기에 나서게 되는데, 이때에 발매한 솔로 1집의 타이틀곡인 ‘10minutes’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효리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솟게 되었다. 음반뿐만 아니라 그녀가 맡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광고 등이 모두 대중의 주목을 한껏 받았고, 이에 이효리는 ‘완판녀’로 불리며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한때 표절 논란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으나, 자신만의 색깔이 물씬 담긴 앨범을 내놓으며 거짓말처럼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수영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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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처연한 발라드 ‘I Believe’로 데뷔한 가수 이수영. 그녀는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특유의 창법과 곡 스타일로 2000년대 초반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수영은 1집 이후 발매한 ‘Never Again’, ‘그래서 사랑해’, ‘라라라’, ‘덩그러니’, ‘휠릴리’를 모두 히트시키면서 상당히 긴 전성기를 보냈으며, 2003년과 2004년도 연속 MBC 가요대제전에서 최고인기 가수상을, 2004년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는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보아

사진: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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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아이돌 명가’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여자 솔로 가수가 바로 보아였다. 2000년도 데뷔 당시 ‘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와 나이답지 않을 실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보아는 처음엔 엄청난 안티 군단을 몰고 다녔으나, 이후 일본 진출에 성공하면서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그녀는 아시아의 별’,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등으로 불리며 엄청난 양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그 결과 한국과 일본 두 국가에서 판매되었던 보아의 앨범 총 판매량은 무려 천 만장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이유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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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 가요계에 데뷔했던 아이유. 그녀는 가창력을 앞세운 진지한 발라드 ‘미아’를 데뷔곡으로 선보였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에 이듬 해에 노선을 살짝 틀어 발랄한 이미지로 변신을 꾀했다. 그리고 이 전략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Boo’와 ‘마쉬멜로우’로 상승세를 이어가던 아이유는 2010년, ‘좋은 날’로 국민 여동생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후는 그야말로 불패의 신화였다. 어느덧 햇수로 데뷔 13년 차를 맞이한 아이유는 어엿한 아티스트로 거듭났고,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 : 이희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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