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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면 안타까웠던 '베이비복스'의 근황

글 : 박인수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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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은 바야흐로 1세대 아이돌들의 전성시대였다. 성인들이 주로 소비했던 가요의 주소비층이 10대로 전화되면서, 하이틴 세대를 타깃으로 한 그룹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흔히들 1990년대 후반의 아이돌 ‘4대 천왕’하면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을 떠올리고는 한다. 하지만 네 팀 이외에도 방송가를 주름잡았던 그룹들이 적지 않다. 베이비복스 역시 그 그룹들 중 하나에 해당한다. S.E.S와 핑클과는 차별화되는 콘셉트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했던 베이비복스. 어느덧 데뷔한지 22년이 훌쩍 지난 지금, 베이비복스의 멤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근황을 함께 알아보자.

 

 

데뷔 초반, 잦았던 멤버 교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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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명인 베이비복스는 “Baby Voice Of eXpression”의 줄임말로, 그들은 1997년 7월, 1집 타이틀곡 ‘머리하는 날’로 데뷔했다. 그러나 1집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다소 노숙한 이미지와 콘셉트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활동 중간, 원년 멤버였던 리드보컬 차유미가 소속사와 아무런 상의 없이 돌연 미국행을 택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발목 부상과 무리한 활동 강행이 이유였다고 한다. 이에 베이비복스의 소속사였던 DR뮤직은 급하게 간미연을 멤버로 영입하고 활동을 이어가지만 결국 미미한 반응 속에 컴백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사진 : 베이비복스 <야야야>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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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반전됐던 것은 2집 활동부터다. 원년 멤버였던 정시운, 정현전이 연이어 탈퇴하고 심은진과 이가이를 멤버로 영입한 베이비복스는 1998년 9월, 2집 타이틀곡 ‘야야야’로 컴백한다. ‘야야야’는 당대 최고의 인기 작곡가였던 김형석의 작품으로, 1집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달콤한 멜로디로 단숨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 주영훈이 만든 후속곡 ‘Change’까지 나름 인기를 끌면서 베이비복스는 그 해 SBS 가요대전과 서울가요대상에서 각각 신인상과 인기가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이내 ‘1군 걸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문희준-간미연 스캔들로 100만 안티 생성

사진 : 네이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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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멤버 이가이가 나이를 무려 10살이나 속이고 활동했던 것이 밝혀지면서 소소하게 논란을 빚었고, 베이비복스는 다시 한 번 공개오디션을 통해 새 멤버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합류하게 된 것이 당시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은혜였다. 그렇게 우리가 기억하는 전성기 시절의 멤버 구성을 완성한 베이비복스는 3집 ‘Get Up’으로 완벽하게 자신들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당시 S.E.S와 핑클의 대성공으로 소녀풍 일색이었던 다른 걸그룹들과는 다르게, 과감한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던 것이다.

 

사진 : tvN <현장토크쇼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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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던 중, 후속곡인 ‘Killer’ 활동하던 때에 H.O.T.의 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당시 H.O.T는 10대 소녀들에게 그야말로 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상태였기에 파장은 엄청났다. 간미연에 대한 H.O.T 팬들의 테러가 쏟아졌던 것이다. 눈을 도려낸 사진 정도는 애교고, 살해 협박을 당하기가 일쑤, 녹슨 커터 칼을 넣은 편지까지 보내어 멤버들이 부상을 입는 일도 생긴다. 이 이후, 베이비복스는 활동 내내 ‘100만 안티’라 불리는 무리에게 시달려야 했다.

 

이후 4집 타이틀곡인 ‘Why’로 활동하던 때에도 큰 사고가 일어났다. 베이비복스의 안티팬이 물총에 식초, 고춧가루, 모래 등을 마구잡이로 섞어 베이비복스 멤버를 향해 내용물을 발사하는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윤은혜는 여기에 눈을 정통으로 맞아 한동안 안대를 착용한 채 방송을 해야 했다.

 

 

한류 1세대로 승승장구

사진 :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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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베이비복스는 가요계에 유의미한 족적을 여럿 남겼다. K-POP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특히 중화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로 태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몽골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어, 대통령으로부터 국빈 대접을 받은 바 있다. 또한 한국에서도 유명한 홍콩의 톱스타 곽부성으로부터 듀엣곡을 함께 부르자는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DJ DOC 이하늘로 인한 구설수, 그리고 해체

사진 : 낚시채널 F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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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베이비복스는 7집 활동 당시 다시 한 번 난관에 봉착한다. 그들의 7집 타이틀곡인 ‘Xstasy’에는 전설적인 래퍼 2pac의 육성이 삽입되어 있다. 베이비복스 측에서 2Pac의 생전 미공개곡을 정식으로 사들여 샘플링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DJ DOC의 이하늘이 ‘고인이 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며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라고 부르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 내었다. 이후 논란은 일파만파 번져 나갔고, 이에 DR뮤직은 이하늘을 고소하여 승소하기에 이르지만, 이하늘은 끝까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훗날 DR뮤직 대표는 이하늘의 발언에 대해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진 : tvN <현장토크쇼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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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이비복스는 두 달 만에 7집 활동을 흐지부지하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심은진과 윤은혜가 잇달아 팀 탈퇴를 선언하고, 나머지 멤버들도 재계약 시기를 맞이하면서 베이비복스는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았다.

 

 

멤버들의 근황

사진 : 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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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해체 이후 배우로 전향한 윤은혜는 드라마 <궁>, <포도밭 그 사나이>, <커피프린스 1호점>로 연이어 홈런을 날리면서 연기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심은진 역시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연기 활동과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병행하면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 나갔다. 간미연도 솔로 앨범 발매, 라디오 DJ, 예능프로그램 등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이희진은 한동안 연예 활동을 쉬며 연기를 배웠고, 그 결과 <최고의 사랑>, <품위 있는 그녀>, <황후의 품격> 등의 인기 드라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이지 역시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 2010년도 결혼한 이후에는 연예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진 : tvN <현장토크쇼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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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는 베이비복스가 불화로 인해 해체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멤버들은 이후로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돈독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2018년도 연초에는 팬들과 함께 멤버들의 생일파티를 열어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많은 사건들 속에서도 굳건하게 팀을 지켰던 베이비복스 다섯 명이 언젠가는 다시 무대에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글 : 박인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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