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도, 류준열도! 대기만성형 스타 베스트 10
글 : 이희주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떻게 기회가 찾아와 ‘빵’ 터질지 모르는 연예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에야 시나브로 대중의 눈에 띄는 스타들도 있다. 긴 시간 동안 공들여 갈고 닦은 탓일까. 그들이 지닌 빛은 더 오래, 더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럼 지금부터, 큰 그릇을 채우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대기만성형 스타들을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다.
이시영
사진 : 이시영 SNS
이시영이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그녀는 배우가 되고자 끊임없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어 나갔지만 기회는 이시영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특유의 끈기로 개명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작은 역부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 나간 끝에 결국 KBS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의 ‘민지’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그 이후로도 이시영은 <부자의 탄생>의 철부지 악녀 부태희 역을 익살맞게 소화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았기 때문일까. 이름을 알린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그 흔한 ‘연기력 논란’에 단 한 번도 휩싸인 적이 없다.
정해인
사진 : 정해인 SNS
2013년 AOA의 뮤직비디오 '모야'로 데뷔할 당시, 정해인은 신인치고는 적지 않은 스물여섯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데뷔해 꾸준히 필모를 쌓은 뒤 서른 줄에 접어 들어서야 입대를 하는 보통의 남자 배우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와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것. 하지만 ‘군필’은 오히려 정해인만의 장점이 되었고, 군대 걱정을 던 덕분에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나갈 수 있었다. TV조선의 '백년의 신부'로 첫 드라마 연기를 경험한 정해인은 '삼총사', '블러드', '응답하라 1988', '그래, 그런거야', '도깨비',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다양한 작품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단계씩 입지를 다진 결과, 드디어 JTBC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첫 주연을 맡으면서 그야말로 ‘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유재석
사진 : SBS 드라마 공식포스트 - PD노트
유재석은 1991년, KBS 1회 ‘대학개그제’ 입상을 계기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어린 유재석은 자신이 금방 스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무명생활은 무려 7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남희석, 김국진, 김용만 등 데뷔 동기들이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는 일마다 어긋나기만 했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실력과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단 한 번의 기회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유재석. 결국 그의 겸손함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은 그를 국민 MC라는 꽃길로 인도했고, 유재석의 전성기는 십수 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중이다.
황치열
사진 : 황치열 사진
2007년 가요계에 데뷔한 황치열은 꾸준히 음악을 해왔다. 듣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계속해서 새 앨범을 발표했고,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등, 생계 활동도 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거다. 그렇게 꾸준히 한 우물을 파던 황지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15년경. 그는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그 결과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기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16년, 그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단박에 한류스타로 각광받게 된 것. 덕분에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에만 해도 옥탑방에 살았던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산 아파트에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류준열
사진 : 류준열 SNS
류준열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처음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남들에 비하면 분명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 종영 이후 바로 MBC의 미니시리즈 ‘운빨로맨스’의 주연을 꿰찼다. 그 이후 ‘더 킹’,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명실상부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상황. 유명해지기 전부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다져 놓았던 물 샐 틈 없이 완벽한 연기력이 그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진웅
사진 : 영화 <해빙> 스틸컷
‘스타’라기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조진웅. 그 역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스타에 해당한다. 기나긴 무명시절을 보낸 조진웅은 KBS2의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에 순박한 재미교포로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눈에 들었다. 이후 SBS의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 무사 무휼로 등장하면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인정받았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이후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일본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불러 모았던 tvN의 드라마 ‘시그널’의 주연을 맡으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대열에 들어섰고, 그의 소탈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는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변희봉
사진 : 영화 <옥자> 스틸컷
배우 변희봉의 출발점은 사실 연기자가 아닌 성우였다. 연기자로 전업한 이후, 변희봉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개성 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한때는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야 했던 변희봉을 구제했던 건 다름 아닌 영화감독 봉준호. 봉준호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떠오른 변희봉은 70대의 늦은 나이에 영화 <옥자>로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워너원 윤지성
사진 : 윤지성 인스타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연습생으로 출연한 끝에 보이그룹 워너원의 리더로 데뷔한 윤지성 역시 대기만성형 스타의 전형이다. 아이돌로서는 ‘조상 격’ 나이에 해당하는 스물일곱에 데뷔한 그는 유난히도 긴 연습생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코앞에서 데뷔가 좌절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대학원 진학, 심리 치료 공부 등의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두면서 끊임없이 꿈을 좇았다고 한다. 특유의 소탈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지성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웠던 시절, '정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자신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며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윤석
사진 : 영화 <화이> 스틸컷
아침드라마나 영화의 단역 등으로 소소히 배우 생활을 이어오던 김윤석. 김윤석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연기는 참 잘하는데 이상하게 잘 안 풀린다’라고. 하지만 하늘은 역시 원석인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아귀로 단숨에 충무로의 신 스틸러로 떠올랐던 것. 그의 강력한 존재감은 이내 <추격자>의 타락한 형사 역으로 이어졌고, 결국 <추격자>를 통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내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의 날고 기는 커리어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큰 역 작은 역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을 쫓아온 그의 뚝심이 좀 늦었지만 더욱 눈부신 성공의 반석이 되었던 셈이다.
송해
사진 : KBS <전국노래자랑> 캡쳐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오빠, 개그맨 송해야말로 대기만성형 스타의 끝판왕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한 방송에 출연한 송해가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고 칭했기 때문.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두고 “50대까지 허송세월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배삼룡, 서영춘과 같은 걸출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 본 채로 무려 수십 년의 무명생활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황혼을 바라보는 50대가 되어서야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야전무대를 해보자”는 신출내기 PD의 제안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만났던 것. 그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국민 MC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글 : 이희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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