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확산으로 억울한 죽음 밝힐 수 있게 된 '故 장자연 사건'
글 : 안혜선
9년 전, 배우 장자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30세. 꽃다운 나이였다. 배우 장자연의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장자연이 유력 인사들에 대한 성 접대를 강요받다가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를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와 성 상납 대상자인 유력인사 리스트, 일명 '장자연 리스트'가 공개되었는데 언론인과 기업인 등 유력인사 30여 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장자연을 자살로 몰고 간 성 접대 의혹을 속 시원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경찰은 접대 의혹 등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17명 중에서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아무도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결국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와 전 매니저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동안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달라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자연 자살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글이 2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결국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과거사 정리의 의미와 사건의 중대성,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대상 사건을 선정했다"며 이 사건을 재조명하기로 결정했다.
배우 장자연, 스스로 목숨 끊은 채 발견
2009년 3월 7일, 배우 장자연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롯데제과 CF로 데뷔해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 중이던 그는 왜 데뷔 3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당시 경찰은 장자연이 사망하기 1년여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던 점을 감안해 장자연의 죽음을 단순 자살로 판단했다. 그러나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모 씨가 장자연의 자필 문건을 공개한 뒤, 사건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해당 문건에서 장자연은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문건에서는 '어느 감독이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시켰다', '접대해야 할 상대에게 잠자리를 강요받았다', '나를 방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고 밝혔다. 특히 장자연은 '조선일보 방 사장'과 기획사 관계자, 기업인 등에게 술 접대와 잠자리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경찰, 성 접대 의혹 밝히기 위해 수사 진행
이에 경찰은 장자연의 전 소속사 대표 김모 씨가 장자연에게 유력 인사들에 대한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
처음에는 불특정 인사들이 용의선상에 지목되었으나 경찰은 2009년 3월 24일 12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유족 등에 의해 고소된 피고소인 7명과 문건에서 거론된 5명 등이었다. 피고소인 7명 중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3명은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모 씨와 언론 관계자 2명이었으며, 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 등 4명은 문건이 밝힌 성 상납, 술 접대, 골프 접대 등의 행위와 관련된 강요죄 혐의로 지목된 사람들이었다.
이외에 강요죄로 고소당한 인물은 언론사·IT 업체·금융 업체 대표 등 연예관련 금전거래 관련자로 알려졌다. 또한 문건에 거론된 5명 중 2명은 드라마 PD로 알려졌다. 한 명은 김모 씨가 장자연과 함께 태국에서 골프를 접대한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태국으로 오라는 것을 거절했다가 불이익을 주었던 것으로 지목된 사람이다. 나머지 3명은 김모 씨와 사업관계로 자주 접촉했던 기업체 대표 등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모 씨와 유모 씨만 폭행이나 협박 혐의로 기소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김모 씨를 조사한 결과, 장자연의 자필 문건에 적혀있던 '조선일보 방 사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김모 씨가 경찰에서 "장자연과의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사람은 방 사장의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대표"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방 대표를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또한 장자연 사건에 대해 "술자리 접대를 받은 사실은 확인했으나, 범죄 관련성이 확실치 않아 내사중지 또는 내사종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자연 자필 편지 50여 통 공개
장자연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SBS는 2011년 3월 6일 장자연의 자필 편지 50여 통을 입수했다고 보도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장자연이 총 31명에게 100번 넘게 성 접대를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공개된 편지에는 "김 사장(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 때문에 연예계 꿈을 접은 연예지망생도 한둘이 아니다", "지금 많이 힘들고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서 그러는 거지", "무서워, 사람과 마음을 나눈다는 게. 모두 다 거짓말, 사기꾼"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이 편지는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전모 씨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법원은 장자연의 편지를 위조한 전모 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故 장자연 사건' 9년 만에 재조사 결정
사진: 영화 <노리개>
2013년 4월 18일,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노리개>가 공개됐다. 장자연이 떠난 지 약 4년 만의 일이다. 권력에 의해 희생된 한 배우의 부당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와 정의를 쫓는 검사가 권력 집단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지희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와 검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지희의 모습이 장자연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아있기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이후에도 장자연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재수사는 끊임없이 요구돼 왔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2018년 초 미투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장자연 사건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故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글이 공개된 지 1달 만에 무려 235,796명의 국민이 동의를 표했다. 사회의 권력에 의해 꽃다운 나이에 꿈과 인생이 모조리 짓밟힌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사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당시 경찰과 검찰에서 주요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모든 위원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과거사 위원회는 2018년 4월부터 한 달 동안 대검 진상조사단이 사전 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본 조사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본 조사가 시작돼 검찰이 성 접대를 강요한 유력 인사들이 강간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할 경우 공소시효는 최소 10년이기 때문에, 시효가 남은 사건의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장자연 사건을 단순히 자살 사건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장자연은 부조리한 현실에 의해, 사회 권력에 의해 타살된 것이다. 나약하고 힘이 없는 신인배우였던 장자연은 이 사회에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닿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제 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피해자가 없도록 우리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
글 : 안혜선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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